그제 밤 뉴스 끝나는 무렵 일기예보를 보는 중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목요일인 어제 천둥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며 지도의 오른쪽 반이 아주 파란색으로 칠해져있었다.
온 가족에게 비소식을 알리며 내일은 우산을 꼭 챙기고 가장 높은 온도가 25도라며 들떴다.
언제부터 비 소식에 이렇게 좋아하며 은근 흥분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온 나라가 가물어서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는 곳도 있고 섬에는 급수차로 물을 실어다 나르며
서로 물탱크에 채워놓기 바쁘고 급기야 물 때문에 이웃 간에 싸움이 나 돈독하던 사이가 원수가
되기도 한단다.
예로부터 기후가 좋은 나라가 잘 산다는 말이 있다.
먼 나라에는 물 부족으로 썩어가는 물도 마시고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기도 하니 물의 소중함은
물을 마음껏 쓰고 살았던 우리에겐 정말 먼 나라 얘기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뉴스에서도 그렇지만 가뭄이 심각하여 우리나라도 물이 부족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파트 화단에만 나가도 꽃과 나무들이 생기가 없이 축 늘어져 안타까운 모습이고 텃밭에도 물을 줘야
푸성귀들이 자라는데 급기야 오이는 땅꼬마가 되어 자라기도 전에 열매부터 맺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니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집에 가면 가족들에게 양치할 때 물 잠그고 헹굴 때만
쓰도록 하고 면도할 때도 꼭 잠그고 하라며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물론 빨래도 모아서 하는 것이 좋고 아낄 수 있는 한 최대로 아껴보자며 독려를 한다.
그러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공공시설에서 쓰는 물은 공짜려니 하고 펑펑 쓰는 경우가 있어
수영장에 가서도 아껴야 한다며 친한 사람들에게도 슬쩍 가뭄에 관해 얘기하며
우리가 먼저 아껴야 한다고 서로 그러자 했다. 그래 봤자 어느 정도의 양은 어차피 쓰게 되지만
그래도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한 방울이라도 절약되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였다.
어제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던 다음 날이었기에 아침부터 하늘을 열심히 올려다보며 기다렸다.
점심시간 즈음에 하늘엔 구름이 까맣게 덮였는데 이상하게도 먼 하늘은 파랗고 구름까지 둥실 떠 있어 조금 불안했다.
오후가 되자 기다리던 천둥소리가 우르릉하고 울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기다리던 비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마음으로 "실로 오래간만에 내리는구나! "라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흙먼지에서 냄새가 살살 올라와 공장 텃밭의 거름 냄새와 함께 아련한 고향의 냄새까지 동반하여
그리움의 냄새가 이 비로 인해 다 사라지겠지! 라며 기대했다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라고 할 것도 없이 무게만 잡다 바로 그쳐 어찌나 아쉬운지 오래도록 기다렸던 자신이 무색했다.
목을 빼고 기다렸던 사람이 왔다가 삐죽 담 너머에서 눈인사만 하고 휭하니 뒤돌아서 가는 것처럼 얼굴도
제대로 확인 못 했는데 간 셈이다. 기다리던 심정은 상처받은 것처럼 허전하고 아쉬웠다.
흙냄새가 나기 시작한 도로는 기다렸던 비가 도로를 다 적시기도 전에 떠나는 바람에 금세 보송하다.
서운한 마음은 천둥소리까지 내더니 고작 찔끔 그것도 비라고 내렸나 싶어 원망스러웠다.
이후로 서운함을 달래 주듯이 한 번 더 후다닥 지붕을 때리던 비는 뒷모습도 보여줄 경황없이 훌쩍 떠났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은 애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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