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이야기)
명절을 보내기 위해 오셨던 시어머님을 토요일에 모셔다드렸다.
와 계시는 동안에 잘 해드려야지 했던 마음이 오신 날 퇴근 후 집에 들러서면서 확 접혀버렸다. 옹졸하게도 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어머님의 투정을 이해하기보다는 서운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머님, 오랜 시간 고속버스 타고 오셔서 힘드시지요?"라고 인사를 드리니 "내가 뭣이 힘드냐? 차가 데려다주는데!"라고 퉁명하게 쏘아붙이셨다. 85세의 어머님이 워낙 건강하셔서 지치지 않고 오셨기로서니 며느리의 인사에 사춘기 소녀처럼 톡 쏘며 대답을 하시다니 순간 어리벙벙했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 곁에 앉아서 염색하고 파마까지 하고 오신 어머님은 전보다 뽀얗게 살이 오르셨고 깔끔하니 좋아 보여서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하니 "좋아질 것이 뭐가 있냐!"라 시며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시고 텔레비전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계셨다. 전과 다르게 반응하시니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저녁준비를 위해 미리 사다 놓은 채소를 손질해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카레를 만들어 드렸다. 대접에 가득 한 그릇을 설거지할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드시고 거실로 가신 틈에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님이 왜 저리 서운하신 표정으로 말씀도 그렇게 하시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남편도 모르겠단다.
설거지하며 곰곰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났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불러서 물었다. "혹시 터미널에서 어머님께 다음 주말에 모셔다드린다고 말씀드렸어요?"하니 터미널에서 모시고 집으로 오면서 다음 주말에 모셔다드리겠다고 했다는 거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는지. 아들 집이라고 좋아서 오시는데 집에 도착하시기도 전에 되레 어머님 집에 모셔다드린다는 말을 먼저 했으니 어느 부모인들 서운하지 않을까 싶었다.
중요한 건 아들 생각과 아들의 말이지만 모두 며느리가 시켜서 그런다고 지레짐작하고 결론을 내리시니 아들에게보다는 며느리에게 많이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해마다 설 전에 음력 12월 26일이 시아버지 제사라 그 전에 오셔서 정월 대보름이 지나야 시골로 가시는 원칙이 있어 항상 스무날 이상에서 한 달 남짓 계시다 가시는데 이번엔 시아버지 제사 이틀 뒤에 오셨고 정월 대보름 앞에 모셔다드리게 되었다. 열하루 만에 먼 길 오셨다가 가시려니 아쉬움과 서운함이 아주 많으셨는지 이번엔 내내 뾰로통한 모습에 반찬 투정까지 하셨다. 말일에는 남편과 아이들 출근 후 가장 늦게 출근하는 나와 둘이 앉은 식탁에서 "나는 한 번 먹은 나물 반찬은 안 먹는다. 네가 먹고 가거라" 시며 나물 반찬 접시를 휙~ 밀어주셨다. 그 나물도 명절날 시누네 가족들이 와서 다 먹고 다음 날 다시 만든 거라며 설명을 해도 한 번 먹지 두 번은 안 먹는다며 소고기뭇국에 김치와 김만 달라 하시니 눈치 없는 남자 때문에 시집살이 제대로 한 셈이다.
남편은 아침이면 모두 출근하고 아침 7시 20분부터 가장 일찍 퇴근하는 내가 오후 5시 20분경에 집에 도착하니 그동안은 혼자 계시면서 문밖으론 한 발짝도 못 나가시고 종일 혼자 계시느니 시골에서 회관 가서 지내시는 게 더 좋으시겠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또 다른 주는 주말마다 행사니 뭐니 바빠 3월이나 돼야 시간이 나기 때문이라며 내게도 며칠 전에 얘기하긴 했지만, 모시고 오면서 눈치 없이 덜렁 먼저 그 얘기를 했으니 얼마나 서운하셨으면 열흘 내내 시큰둥하게 계셨다. 간식을 챙겨드려도 단 것도 싫다 떡도 싫다 과자도 싫다시며 전과 같이 드시질 않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만 보며 지내셨다.
목요일엔 제법 좋은 외투를 하나 사 드리고 딸이 할머니 조끼와 바지까지 사 드렸지만, 이번에는 와서 나흘 만에 집에 가려 했다며 억지소리도 하셨다. 나흘이면 설날인데 그럼 뭐하러 오셨냐는 말까지 하며 아들과 살짝 투덕거리기도 하셨으나 가시기 전에 한방오리백숙을 사 드리고 손주들이 용돈도 챙겨드리고 토요일엔 시골집까지 모셔다드리며 두둑하게 용돈도 챙겨드렸다. 토요일 이른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광주에 사는 시누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오후 시골집에 들어서면서 부엌으로 가 싱크대며 가스레인지 냉장고 청소에다 시누 네 명과 둘째 시누의 아들 내외와 손주 셋까지 어머님 댁에 모여 북새통이 되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미리 준비해간 커피며 과자를 회관에 챙겨다 드리고 이른 저녁을 하다 보니 머리가 빙빙 돌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출발하려면 온전히 하루를 다 버릴 것 같고 눈이나 비가 온다기에 6시 반쯤 출발하여 밤 10시 반에 집으로 돌아왔다.
눈치 없는 남자는 마누라를 시집살이하게 하고 오해받게 한다.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데 말을 해도 안 되는 남자가 있다.
1월 25일 오셨다가 2월 4일에 가셨으니 가장 짧은 기간 머물다 가시게 되어 못내 서운해하셨다.
전에 써 둔 글이 임시보관함에 있어 불러왔는데 봄이 오늘 길목에 우중충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