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반가사유상
권 상 진
얼굴과 손등에 보풀보풀 녹이 일었다
눈물은 날 때마다 눈 가 주름에 모두 숨겼는데도
마음이 습한 날은 녹물이 꽃문양으로 번지기도 하였다
오래도록 손때가 타지 않은 저 불상의 응시는 일주문 밖
종일 방문턱을 넘어 오지 않는 기척을 기다리느라
댓돌에 신발 한 켤레는 저물도록 가지런하다
낡은 얼레처럼 숭숭한 품에서는
시간이 연줄보다 빠르게 풀려나갔다
두어 자국 무릎걸음으로 닿을 거리에
아슬하게 세상이 매달려있는 유선전화 한 대
간혹 수화기를 들어 팽팽하게 세상을 당겨 보지만
떠나간 것들은 쉬이 다시 감기지 않는다
몇 날 열려진 녹슨 철 대문 틈으로
아침볕은 마당만 더듬다가 돌아서고
점심엔 바람이 한 번 궁금한 듯 다녀가고
달만 저 혼자 차고 기우는 밤은
꽃잎에 달빛 앉는 소리도 들리겠다
누워서 하는 참선은 하도 오래여서
반듯이 의자에 앉는다
오늘은 강아지 보살 고양이 보살도 하나 찾지 않아서
한 쪽 다리는 저려서 들어 포개고
한 손은 눈물을 훔치러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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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아무나 쓰는 게 절대 아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시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시때때로 이 시를 떠올리게 된다.
엄마가 생각날 때나 홀로 사는 노인에 관한 기사나 나오거나 쓸쓸히 혼자 걷는 노인을 보면
여지없이 이 시가 생각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무시로 생각이 난다.
좋은 시란 세월이 흘러도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서라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시가 아닌가 싶다.
몇 년이 흘러도 시를 대할 때마다 감동을 주는 시다.
누군가를 가슴 뜨거워지게 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고뇌가 있어야 하는지 헤아리게 된다.
이 시를 만난 것은 2015년 여름휴가를 친정에서 보내고 온 후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은해사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 감상을 하며 줄곧 은해사를 떠올렸고,
은해사 마당의 커다란 측백나무와 좁고 오래된 돌계단을 오르며, 태초부터 있었을 법한 닳은 문지방과
모셔진 반가사유상을 떠올렸다. 이 얼마나 감상할 줄 모르는 자세이던가!
시인님의 코치를 받고 다시 감상하며 전율을 느꼈던 시이다.
1년이 지나고 다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고 되새김질하며 홀로 계신 엄마의 하루를 생각했다.
수많은 홀로 사는 노인의 지루한 하루를 이 시 하나가 대변해 준다. 가슴 아리는 시다.
권상진 시인은 스스로가 가짜시인이라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 젊은 시인이라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