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버스에 오르며 무색한 표정을 짓는다.
카드를 갖다 태그하는 승객들을 먼저 들여보내기 위해 한쪽으로 비켜서서 동전을 센다.
마흔이나 되었을까?
그녀! 숱 많은 단발머리에 검은 뿔테안경이 헐렁하게 얹혀진 밋밋한 콧날과 화장기없는
부스스한 낯빛에흔들리는 눈길로 의자에 앉았다.
여름임에도 냉기가 가시지 않는 마음을 감싸고 팠음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래서 올여름 내내 줄기차게 입고 다녔을 보푸라기가 장식처럼 달린 남색 스웨터 끝이
동글동글 뭉쳐져 하얀 털까지 묻어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폭넓은 층층의 하얀 집시치마는 발목과 종아리 한 뼘만 내놓은 채
엉성하게 그녀의 손길로 구깃구깃하게 자리잡는다.
나와 대각선 의자에 앉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함께 버스에서 내리 자고 싶은 충동이 인다.
추레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흔무렵의 내가 그려졌다.
아무리 멋을 내도 속일 수 없었던 궁핍함은 겉모습과 함께 내 속에서 하염없이 피어나
떠날 줄 몰랐고 자신감은 어디에도 없었던 그날들이 겹쳐진다.
그녀에게서 눈길을 거두어야 하는데 자꾸만 덧입혀지는 지난날의 내 모습이 목울대를 쓰다듬는다.
가난과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다시 눈길이 아래로 갔다.
납작한 상아색 신발 위에 얌전한 리본은 그대로이나 발뒤꿈치에서 새끼발가락까지
긴 선이 너덜거리며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춘다.
햇살에 비친 먼지와 함께 가끔 움직여지는 선.
무작정 잡아끌고 내리고 싶은 충동.
그녀에게 새신발을 사서 신기고 통기성 좋은 짧은 티셔츠를 사서 입히
무릎까지 훤히 내놓을 반바지를 사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나는 땀을 비질비질 흘린다.
옷은 그렇다 치고 신발 옆에 누워있는 끈을 보며 차라리 자르고 신으면 나을 텐데 어쩌자고 저러고
나왔으며 누가 밟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라는 걱정에 다시 가슴이 쿡쿡 쑤신다.
굽이 낮아도 저렇게 낮을까? 곰곰 그녀의 뭉툭한 발목을 보고 신발을 자세히 살폈다.
신발바닥과 버스바닥이 나란하게 붙어 더없이 다정해보인다.
마흔무렵의 나는 지레 주눅들어 눈을 아래로 향한 채 걸었으며 그렇게 살았다.
그녀의 눈도 아래로만 향한다.
창밖을 보아도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하고 사람을 봐도 다리쪽을 살핀다.
베이지색 천 가방을 안고 있는 그녀가 오일장에 가 신발을 사고 바지도 사고
예쁜 티셔츠도 샀으면 좋겠다.
오늘이 8일 마석 장날이니까! 그리고 이 버스는 장터로 가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호흡이 편안해진다. 가끔 생기는 이 오지랖은 답답증이 된다.
파장 터에서 건져 올릴 떨이의 시간을 마음껏 활용하여 그녀의 남루한 가방을 꽉 채운 뒤
집으로 가는 골목길엔 닳은데 없는 5cm 정도 높은 굽의 값 싼 슬리퍼가 신겼으면 좋겠다.
주택가 골목길을 찰박찰박 걷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8월 어느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