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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은 것들

휴대폰 엿보기!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4. 10. 20.

제목부터 이 무슨 말인가 하시겠지요?

요즘 뉴스에도 많이 나오는 카카오톡 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초지종 얘기해야만 될 거 같아 길지만 얘기합니다.

지루하신 분은 마지막만 보시면 될 거 같네요.

 

저는 꽃다운 스물넷에 난생처음 소개팅을 했는데

사람 사귀기 1등인 우리 둘째 언니가 새댁일 때 한동네 사는 새댁을 알아서

우연히 집을 오가며 앨범을 보여주고 내 동생이 있는데 애인도 없다며

옆에 사는 새댁의 시동생과 날을 잡고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과 둘이 만났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제 맘엔 와닿지 않아 그저 토마토주스 한 잔 마시고는 헤어졌고

남자 쪽에선 맘에 든다며 전화번호를 요구했는데 언니 편에 전하겠다며 미뤘습니다.

언니와 옆집 새댁의 등쌀에 두어 번 만남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니라는 생각에 흐지부지 안 만났는데

한동네 살다 보니 언니네 집으로 편지도 보내왔고

그럭저럭 반년이 지나니 친구들도 대부분 시집을 가고 몇 명 남은 친구 중 하나가 되어

이러다 시집 못 가는 게 아닌가? 하며 나 좋다는데 다시 한번 만나볼까? 라며

실컷 튕기다 연락을 취하니 그 사람은 그새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참 급하기도 했구나! 생각하며 어차피 마음에 들지도 않았는데 하고 없던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애가 타서 구구절절 편지 보내고 1년이 채 못 되었으니 남자란 저렇구나! 했습니다.

 

그 후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오랫동안 잊었는데

2000년대 초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활성화로 저도 슬슬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고 퇴근 후엔

여기저기 컴퓨터 하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이 늘어갔습니다.

친구들의 소식도 접하게 되면서 'I love school'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나를 찾는 옛날 소개팅 남자의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 사람에게 너무 쌀쌀맞게 대했던 자신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죄라면

날 좋아한 것밖에 없는데 라며 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습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역시 감정은 덤덤하고 이성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서로 아이들 이야기하고 그렇게 드문드문 연락이 왔습니다.

 

7년 전 즈음에 가평 쪽에 있는 삼각산을 간다며 지나는 길에 한 번만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 일터가 이문동 쪽이고 집은 일산이라 며칠 후면 전근을 가게 되었다고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마 볼 수 없을 거 같아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보고 싶다는 말에 얼굴이나

보고 그때의 미안함도 전하고 그래야지 하며 만났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은 말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집사람 생일에 그랜저를 선물해 주었다는 말과

자식들이 전교 몇 등을 한다며 자랑을 늘어놓기 급급하여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지금 봐도 내 스타일은 아니고 역시 이건 시간 낭비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아무리 경제력이니 뭐니 해도

마음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정말 친구처럼 그렇게 1년 이상 연락이 없다가 자주 연락이 올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문자가 오기도 했지요. 정말 오래된 동창생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번 직장 다닐 때 몇 개월 동안 점심시간 짧은 카톡을 보내오거나 해서 간단히 대화하고 그랬습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에 다니면서 연락도 없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카톡이 날아왔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다짜고짜 '휴대폰에 계좌번호 같은 건 적어놓지 마세요'라는 글이 왔습니다.

다른 여러 인터넷으로 이용하는 시청 민원이나 도서관 이용 아이디나 비번을 자꾸 잊어버려서

메모를 해뒀는데 훤히 알고 있어 어리둥절하여 물어봤습니다.

아니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런 게 보이냐고 하니까 다 아는 방법이 있답니다.

 

기분이 몹시 나쁘고 불쾌해서 어떻게 그런 남의 사생활을 알게 되고 내 휴대폰에 있는 것을 알게 되냐고

물었더니 아는 방법이 있다며 그런 건 큰일 나니까 지우랍니다.

기가 막혀서 그 날 이후 그 사람을 차단하고 휴대폰 번호를 삭제하였지만, 상당히 기분 나쁩니다.

어디서 들어보니 휴대폰에 무슨 주소를 깔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정보나 모든 것이

다 보이게 된다더군요.

 

어이없는 것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난 적도 없고 나이 차도 없어 정말 친구같이 사는 얘기며

아이들 얘기 몇 번 오간 것 외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새로 바꾼 내 휴대폰의 모든 자료를눈에 보고 있었는지 기가 막힙니다.

고발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카톡 글도 한 마디로 재수 없다며 지웠는데

그걸 근거로 남겨둬야는데 하는 늦은 후회가 됩니다.

세상이 정말 무서워졌습니다.

가만 앉아서 제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고 무섭습니다.

사람은 항상 내 생각과 같지 않은 것이 분명하고 무서운 세상이란 생각에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휴대폰에 메모하고 다닙니다만 아주 중요하거나 그런 메모가 아니라 지우진 않았습니다.

자꾸만 잊어버리는 기억력 때문에 메모는 필수인데 이런 일이 있고 나니 예전처럼 수첩에 적어 다녀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누군가에 의해 모든 것이 훤히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주 중요한 메모는 휴대폰에 저장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발전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닌 거 같네요.

 

(사진;아마벨라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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