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한 날엔 노트와 펜을 들었다.
스스로을 다독이고 위로하기 위해
전엔 그랬다.
정성스레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곤 했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나 멀리 계신 어머니에게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얘기도 투덜투덜 적었고
수시로 다이얼리에 정성들여 하루를 새겼고 내일을 그렸었다.
지금은 참 많이도 달라져서 펜은 근무시간과 신문에 난 퍼즐문제 풀때와
마트가기전 필요한 물품목록 적을때 정도 펜을 들게 된다.
디지털시대라서 대부분의 일상이 전화나 이메일과 문자로 대화가 이뤄지니
편지는 아예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필기구 소비가 엄청난 숫자로 줄어 들었고
어지간한 사무실에선 컴퓨터로 장부정리를 하고 거래명세표나 다른 여러가지
수기로 하던 대부분을 자판으로 두드려서 뽑아 쓰게 되고
그와함께 점점 글씨를 직접 쓰는 일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누구 글씨체가 이쁘고 누가 글씨를 잘 쓴다는 말도 없어졌다.
학창시절엔 글씨만 봐도 누가 쓴건지 알았고 글씨를 보면서 성격이 담겨있다며
동글동글 꾸며 쓰기도 하고 멋진 정자체 펜글씨 연습도 하였고
친구의 이쁜글씨를 따라 쓰다가 급기야 내 글씨체는 갈팡질팡 길을 잃기도 했었다.
그런 파란의 시간이 지나고 내 글씨는 연애편지에 적절하다는 평을 받으며
친구의 부탁으로 몇 통의 편지를 써주기도 하였다.
참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젠 연습도 없이 맘 내키는대로 자판을 두드리고
온갖 글씨체를 입맛대로 고른다. `
내 글씨체가 미운지 이쁜지 모를뿐더러 내 글씨를 보고
성격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온순한지 유추해 볼 수도 없다.
펜을 자주들지 못하니까 생각하는 시간도 줄어든 게 분명하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로 인해 편리함도 많지만 가끔씩 아쉬움이 자리해
아날로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펜을 들고 다이얼리를 펼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고
손끝에 잡힌 펜의 감촉이 점점 어색해져서 글씨를 쓰다 보면
내 글씨가 맞던가? 싶기도 하다.
일말의 섭섭함이 있어서인지 가끔 지난날의 다이얼리를 뒤적이다가
요즘도 어색한 펜으로 한페이지씩 적어본다.
못생긴 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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