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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스크랩] 엄마 생신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11. 12. 27.

 

 

 

 

1927년 11월 27일..

안동 權씨 집안에 쭈루루한 아들속에 외동딸로 태어나신 엄마,

외할아버지와 오빠들, 엄마 밑으로 태어난 두 남동생의 사랑까지 독차지한 엄마가 청안 李씨 집으로 시집을 오고

아들과 딸들을 연이어 낳으시고, 지금의 내 나이, 딱 이 나이에 남편을 보내고 혼자가 되신 엄마,

그때 난 23살의 청명한 아가씨였고, 그때 내 눈으로 본 엄마는 당연히 혼자서 남은 생을 마감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지금의 나라면 여전히 남은 평생을 혼자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먹고 사는 것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와 메마른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지는 외로움은 참으로 서글플 것 같다.

 

일흔이 훌쩍 넘기실 때까지 한시간 거리에 떨어진 오빠네로 김치거리를 다듬어서 보내고, 파를 뽑아서 씻어 보내시는 것이 못마땅해 나는 바락바락거리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엄마마음을 아프게 했다.

유독 초저녁 잠이 많고 새벽잠이 없으신 엄마는 교회 새벽종 소리 보다 일찍 일어나 밭으로 가셨고, 아침밥을 먹기전까지 하는 일이 하루종일 하는 일과 맞먹기도 했었다.

농사를 지어서, 대추나무를거두면서, 누에를 치며 바지런을 떨며 결실한 몫은 고스란히 오빠네로 넘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향하여 더 주려고 애쓰던 엄마의 모습은 나를 속상하게 했고 화나게 했고 분노하게 했었다.

 

어느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신 듯한 엄마는 하루 식사량보다 물과 함께 삼켜지는 약의 양이 많아졌고

애지중지 떠받들던 오빠와 언니에게서 은근한 뒷방 늙은이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식사를 하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걸린 엄마를 올케는 정신병원으로 모셨고, 큰언니와  우리는 미친듯이 달려가 엄마를 모시고 오기도 했다. 

사는게 그런 것인지.. 참 서글프기만하다.

 

이제는 눈꺼풀을 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엄마는 아무리 모셔도 싫다고 하시며 오빠네서 '죽을 그 날'을 기다리신다고 하니..

반짝거리며 빛나던 얼굴,  단 한올의 흐트림없이 단정하게 빗어넘기던 머리카락, 흰옥양목 앞치마를 두른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시던 모습, 딸들이 집으로 가면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돌아가는 차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손사레를 치며 결국은 눈가로 손을 가져다 대시던 엄마.

특히 어릴적부터 병약하여 죽은줄 알았던 셋째딸에 대한 사랑은 다른 딸들의 질투를 받을 만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가끔 모른체, 전화도 자주 하지 않은채, 그렇게 살아간다.

 

오랫만에 만난 딸들의 손을 놓지 못하신채, 기약없는 다음을 약속조차 하지 못하시는 엄마,

오래오래 사시라는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를 슬프게 하고 엄마를 서글프게 한다.

 

막내라서 엄마에게 찰싹 붙어 사진을 찍으며 오래오래 살라는 동생의 모습이 더욱 서럽다.

출처 : 여디디아
글쓴이 : 여디디아 원글보기
메모 : 지난 12월 17일 친정엄마를 뵈러 갔다왔다. 엄마의 얼굴은 여름보다 쇠락해졌지만 정신은 그때보다 한참이나 맑아지셨다. 여름에 갔을때는 손님대하듯 대면대면 맞이하시더니 이번에 갔을때는 예전처럼 와락 막내딸로 안아주셨다. 지금 모습 그대로라도 오래계셨으면...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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