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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온 줄도 모르고

by 향기로운 나무(제비꽃) 2020. 3. 5.


이번 주는 4시에 퇴근하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약간은 면목 없고 약간은 민망하지만

종일 있어도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없어 짧게 네, 하고는 화요일부터

4시에 퇴근했다. 문화센터가 코로나로 휴관을 하여 부족한 운동을 저녁에 걷기로 하고

하루 만 보 이상을 걷는다. 몇 년 전 산행하다 발바닥이 아파 멈췄는데 그즈음 무릎도

조금씩 탈이 났다. 높은 산은 포기하고 둘레길을 걷고 야트막한 산만 가끔 갔다.

어제는 무릎이 시큰거려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사면서 보니 

 천으로 된 마스크는 버젓이 많이도 걸려있다.

가격이 비싼 편이라 5천 원짜리도 있다. 전부 천으로 된 마스크이고 최하 3천 오백 원.

약국 출입문 투명 유리엔 A4용지에 '공적 마스크는 없습니다' 약사님 인상 같이

수더분한 듯하면서도 단호함을 풍기며 붙어있다.

천 마스크에 거즈를 사서 넣어 다니라는 딸의 말을 듣고 5 매입 거즈 3개를 전날 샀다.

아침저녁 버스를 타는 10분씩 꼭 써야 하는 마스크라 오늘은 천 마스크에 거즈를 넣고 썼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늘어선 사람들의 마스크 구매 행렬이

안타깝고 갑갑하다. 두꺼운 옷을 입고 줄 선 그들을 보면 겨울이 길게 이어지는 것만 같아

3월인 줄 알면서도 겨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돌돌 싸맨 의료진과 노란 점퍼를 입은 정부 직원들의 누렇게 뜬 얼굴을

보면 그들의 노고에 감사함이 절로 생기고 그들의 건강도 염려스럽다.

염색할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코로나 19 현황과 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많이 지치기 전에 코로나 19 전염이 수그러들기 바랄 뿐이다.

지금 그들은 코로나 19가 시작된 그날처럼 겨울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올봄은,

 초상난 종갓집처럼 소복 입고 한쪽에선 울고 한쪽에선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저마다 할 일이 넘쳐나 눈코 뜰 새 없어 나 왔노라 인사 한 자락 내려놓기도

면구해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문 안을 기웃대며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심부름 온 듯 한 발 한 발 마당으로 들어서 조용히 서 있다.



어제는 저녁마다 걷는 산책로를 약간 벗어나 걸었다.

그동안 산책로를 일자로 걸었다면 징검다리를 건너 다른 길로 들어섰다.

강한 바람결에 문풍지 떨듯 오도도 떨고 있는 파란 꽃을 발견하곤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무리지은 꽃들이 지푸라기를 밀며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것만 같아

바람을 등지고 앉아 들여다봤다.

어쩜 이리도 곱게 피는 걸 모르고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작고 파란 별이 걸으면서 바라봤던 하늘의 별과 크기가 비슷하다.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산책로 양쪽 길가에 파랗게 피었다.


나는 네가 온 줄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조금의 관심, 세심한 눈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구나,

봐 달라고 연신 말 걸어오는 그들에게 다가가야겠구나.

무심함으로 스쳐가는 일 없도록

오늘부터 다시 주변을 잘 살펴야겠구나.

네가 온 줄도 모르고...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