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내리는 날
펄펄 눈이 내린다.
겨우내 검정색 바지에 검정색 패딩을 입고 검정색 부츠를 신고 검정색 가방을 메고
옅어지는 검정을 밀어내며 출근을 하였다.
그동안 날마다 문상가는 차림으로 겨울을 시커멓게 지냈던 분위기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한 것은 3월이 다가올 때부터였다.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아직도 봄이 멀게만 느껴져 차일피일 시커먼 차림새로
우중충하게 며칠을 더 있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하고 미루며 살았다.
오후들어 눈이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터라 이른아침 화장대 앞에서
파란 접이 우산을 밀어놓고 흰바탕에 진분홍무늬가 자잘하게 널려있는
마치 봄꽃이 분분히 날리는 모습의 우산을 가방에 집어 넣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내 모습을 퇴근길에는 화사한 우산으로 분위기 쇄신하리라 단단히 맘먹고 나섰다.
현관을 나서자 오후가 아닌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있어 가볍게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꾹 눌러
우산을 펼치고 봄속에 앉은듯 사뿐사뿐 걸었다. 경쾌하게!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봄눈이 많이도 내리네! 하며 언제나처럼 내리는 문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면서 봄꽃이 날리는 우산을 집어들고 가방을 메고 내렸다.
마침 회사차가 와서 타고는 정문입구에 도착 할 때가 되어 뭔가 허전함에 휴대폰을 찾았지만
가방에도 주머니에도 없었고 회사언니 폰으로 눌러도 벨은 울리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 검정색 패딩이 두 개인데 하나는 주머니가 깊어 빠지지 않지만
하나는 얕아 미리 단말기에 찍은 후 주머니에 넣고 우산을 챙기느라 그사이 빠진 모양이었다.
계속 전화를 하면서 사람이 많지 않은 버스라 소리가 울려 누군가는 받으리라며
공장장차는 다시 우리집 쪽으로 사정없이 달렸다.
다섯정거장이 지나 버스를 만났고 가는 동안에 버스를 탔던 모르는 여인이 전화를 받아
창문으로 건네주었다.
다행인건 이 버스가 우리 읍내만 돌고 도는 버스여서 코스를 알고 있어서였다.
'이런 정신 500년 나간 짓을 하다니~!!'
봄이 오든지 말든지 평소대로 우중충하게 변화를 모색하지 말고 그냥저냥 살아야 되나보다.
왠지 분위기 바꾸고 봄처럼 가벼워져야지라며 우산을 챙기다 그만 휴대폰을 챙기지 못하다니~!!
이젠 정말 큰일이다. 앞으론 점점 더할 텐데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오전내내 제법 많은 눈이 내리더니 이젠 주춤하고 있다.
퇴근 길에는 눈이나 비가 내리려나 말려나?
둘 중에 뭐가 내리더라도 우산을 먼저 챙겨야 되나 휴대폰을 먼저 챙겨야 되나?
다 낡고 오래된 우산이지만 편리하고 색이 고와 정이 들었고 휴대폰 속에는 카드와 사진들이 가득하니
정신을 바짝차려야겠다.